AI가 일하는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여러 회사가 AX1에 힘을 싣고 있고, 내가 일하는 조직도 AI를 업무에 더 쓰려고 한다.

나는 이 흐름에 가장 민감한 직업군에 속해 있어서 새로 나오는 것들을 되도록 먼저 따라가려고 한다. 매일 쫓아가는 일은 피로하고 압박도 적지 않지만, 흐름이 워낙 크고 빨라 손을 놓기가 어렵다. 개발자로 살아남아야지, 해야지 하면서 붙잡고 있다.

나 혼자 빨라져서는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혼자 속도를 올려도, 조직이 그대로면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다.

AX는 내가 얼마나 빨리 배우느냐가 아니라 조직이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에서 갈린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을 익히는 시간보다 그것을 같이 쓰자고 설득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다 같이 쓰려면 필요한 것

몇 번 시도해 보면서 정리한 조건은 세 가지다.

첫째, 리드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잘 아는 사람이 가이드 문서를 만들어야 한다. 각자 알아서 익히라고 두면 원래 관심 있던 사람만 익히고, 조직의 방식은 그대로 남는다.

둘째, 가이드 문서는 가장 모르는 사람을 기준으로 쓴다. 이미 아는 사람이 읽기 좋은 문서는 필요가 없다. 그 문서를 읽어야 하는 사람은 지금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도록 단계별로 적고, 반드시 목차를 붙였다. 한 번 읽은 뒤에는 전체를 다시 읽지 않고, 하다가 막히거나 기억이 안 나는 지점만 찾아 들어오기 때문이다.

셋째, 강요하거나 재촉하지 않고 상대가 받아들일 시간을 준다. 여기가 가장 지키기 어려웠다. 나는 이미 익숙해진 방식이라 왜 안 쓰는지 답답할 때가 있는데, 그 답답함이 말투에 묻어나면 듣는 쪽은 제안 내용보다 재촉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먼저 받는다.

환경을 만들려면 개발 문화부터 설득해야 했다

개발에서 AI를 제대로 쓰려면 환경부터 갖춰야 한다. 컨벤션과 규칙, 정책이 문서로 정리돼 있어야 코드가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는다. AI는 정해진 것이 없으면 그때그때 그럴듯한 판단을 하고, 그 판단이 사람마다 다르게 쌓인다.

그래서 컨벤션을 맞추는 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가드레일을 세우기 위한 선작업에 가깝다. 정해 둔 것이 있어야 AI가 그 밖으로 나갔을 때 나갔다고 말할 수 있고, 리뷰에서도 취향이 아니라 규칙을 근거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규칙을 하나씩 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PR이었다. AI가 만든 변경은 양이 많고 겉보기에 그럴듯해서, 누군가 한 번은 사람의 눈으로 걸러야 한다고 봤다.

당시에는 각자 작업한 브랜치를 로컬에서 바로 병합했고, 브랜치 규칙도 문서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작업한 내용을 PR로 올리고 리뷰를 거친 뒤에 병합하는 방식을 제안하면서, PR 템플릿과 컨벤션 초안을 먼저 만들어 회의를 열었다. 빈 종이를 놓고 PR을 하자고 하면 논의가 시작되지 않는다. 고칠 것이 있어야 사람들이 의견을 낸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해 최종안을 만들고, 작업 가이드 문서까지 붙여서 공유했다.

이 과정은 내 템포에 남을 억지로 맞추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시작했다. 나는 조직의 방식을 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더 그랬다. 필요하다고 말만 반복했다면 다들 각자 일이 바쁜 상황에서 흘려듣기 좋은 이야기로 끝났을 것이다.

제안하는 방식이 AI에 대한 인식까지 만든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큰 변화다. 받아들이는 속도도, 태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제안하는 방식과 이끄는 방식이 따라오는 사람의 인식을 결정한다. AI에 대한 가치관까지도. 강요당했다고 느끼면 그 사람에게 AI는 위에서 내려온 부담으로 남고, 그 인상은 꽤 오래간다.

변화가 크니 다들 지치고 예민하다. 나는 그래도 젊어서 이 정도지, 기존 방식이 오래 몸에 밴 사람일수록 더 힘들 것이다.

그래도 남에게 설명할 수 있게 풀어 보면 내가 잘 알지 못했던 부분이 드러난다. 그래서 가이드 문서를 쓰는 동안 내가 제일 많이 확인했다.

받아들이는 쪽에게 하고 싶은 말

여기까지가 제안하는 쪽의 몫이라면, 받아들이는 쪽에도 한마디 하고 싶다.

새로운 방식은 처음에 할 일을 늘린다. 익숙한 것을 버려야 하니 주저하는 게 당연하다. 다만 그 제안의 의도와 목적을 한 번 보고 판단해 줬으면 한다. 변하는 세상에서 나만 멈춰 있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스무 번 넘게 본 드라마 ‘미생’에 요르단 중고차 사업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가 좋은 사업인 걸 알지만 예전 일2 때문에 아무도 건드리지 않던, ‘불편한’ 사업이다. 영업 3팀은 거기서 그 ‘불편’만 걷어내고 다시 해 보자며 PT를 한다.

그 장면에 이런 내레이션이 붙는다.

중요한 것임에도 애써 싸움을 피하듯 꾀를 부리면 끝까지 추궁한다.

— 드라마 ‘미생’ 中

AI를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걸 모두가 안다. 빠를수록 좋다는 것도 안다. 당장 불편하다는 이유로 피하면 그 불편은 나중에 더 큰 격차로 돌아온다.

정리

이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것이 나올 때마다 먼저 익힌 사람이 문서를 만들고, 다시 설득하는 과정이 반복될 테니까.

그때마다 재촉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상대의 발걸음에 맞추려 한다. 지금처럼.

Footnotes

  1. AI Transformation. 도구를 몇 개 도입하는 수준이 아니라, 조직이 일하는 방식 자체를 AI를 전제로 다시 짜는 것을 말한다.

  2. 과거 그 사업을 진행하다 비리가 터졌고,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회사를 떠났다. 그 뒤로는 회사 안에서 아무도 손대지 않는 건이 되어 있었다.